[플랫한 티타임] ‘왕의 친딸’있어도 ‘36촌 남성’ 찾는 나라, 일본은 왜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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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105회 작성일 26-08-09 06:24본문
지난달 일본 의회는 집권 자유민주당(자민당)의 주도로 ‘황실전범’을 전격 개정했다. 황실전범은 일본의 왕위 계승과 왕실 구성 등을 정하는 법으로, 이번 개정안은 이전과 달리 방계 왕족의 남성 후계자를 양자로 들여 그 아들이 후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왕의 직계인 딸에게 승계하는 안은 논의되지 않았다. 개정 명분은 심각한 왕족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남성·남계 승계’ 원칙을 고수하면서 ‘여성·여계 승계’를 완전히 배제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36촌 이상의 옛 왕족을 양자로 들여, 그 아들부터 왕위 계승권을 준다. 77년만의 황실전범 개정은 이처럼 77년 동안의 사회 인식 변화와는 정반대로 추진됐다.
민심은 싸늘하다. 개정 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50% 이하로 추락했다. 여론조사에선 국민 70~80%가 여성이 왕이 되는 것을 지지했다. 대중적 선호도가 높은 왕의 친딸 대신 갑자기 등장한 36~38촌 남성을 일본 국민이 차기 군주로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플랫]일본, ‘옛 남성 왕족 입적’ 법안 제출에…“여성 왕위 배제” 비판
그렇다면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왜 민심과 충돌하길 택했을까. 여기에는 ‘여성 총리가 여성이 왕이 되는 것을 막았다’ 이상의 ‘장기 시나리오’가 있다고 신기영 일본 국립 오차노미즈여대 교수는 분석한다. 묘하게 다른 자민당과 일본 왕실의 노선, 과거의 영광을 갈망하는 극우, 여계 세습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주의 등이 이 시나리오의 배후에 자리한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신기영 교수를 만나 왜 지금 ‘만세일계 남계 전통’이란 구호가 다시 등장했는지, 이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있는지에 관해 들었다.
- 황실전범 개정 이후 일본 분위기는 어떤가요?
“자민당 내 보통의 우파 정치인들은 2005년 고이즈미 정권 시절 나온 ‘황실전범에 관한 전문가회의 보고서’에서 여제를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을 냈고, 정부도 그것을 받아들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히사이토 친왕(왕자)이 태어나며 관련 논의가 중단됐지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남성·남계만 계승한다고 하니 생소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현 왕의 딸인 아이코 내친왕(공주)이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았던데다 일본이 모델로 삼는 유럽 왕가에서도 여왕이 있기 때문에, 대체적인 일본 사회의 분위기도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개정으로) 아이코 쪽으로 가는 분위기가 막힌 것입니다.”
- 그렇듯 갑작스러운 황실전범 개정이 2026년 중반이라는 시점에 구체화·실행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다카이치 총리가 정권을 잡으면서 자민당과 오래 연립정권을 이뤘던 공명당이 연정에서 탈퇴했습니다. 자민당이 정치자금 스캔들 해결을 미룬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기본적으로 공명당은 평화주의이고, 부부별성제도 찬성하는 등 다카이치 총리와는 정치적 노선이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신자유주의와 보수적 안보정책을 표방하는 ‘차세대 남성 보수’ 같은 일본유신회가 들어오면서 연정 내에서 이런 황당한 질주를 막을 존재가 없어진 것이죠. 거기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크게 이겼고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도 굉장히 높았습니다(70% 상회). 여제론으로 천황제가 흔들리는 것을 불안해하고 일본의 옛 영광을 되찾고 싶은 극우들의 입장에선 이러한 정치 환경이 형성된 지금이 딱 적기입니다. 이참에 남계 전통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겠다고 나선 것이죠.”
- ‘만세일계’라는 논리와 표현은 실제로 자주 쓰이나요?
“사어에 가깝습니다. 일본에 있었던 지난 20년 동안 일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만세일계란 제국주의와 함께 폐기된 구 헌법에 나오는 말이라서, 제국주의 시절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만세일계 자체가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며 가부장적 법체계를 만들 때 나온 새로운 ‘전통’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실제 왕실이 만세일계도 아니었고 8명의 여왕 중 강력한 권한을 가진 여왕도 많았다고 말해요. 그런데도 현 왕실의 후손이 대부분 공주이기 때문에 이를 위기라고 본 이들이 지난 7월 갑자기 그 말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차기 왕의 외척이 되려는 구상으로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리란 관측이 나오는데요(아소 전 총리는 노부코 친왕비의 오빠). 그럴 듯한 이야기인가요?
“아소 전 총리가 그것을 노렸는지 안 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객관적 상황은 그렇게 보입니다. 현 왕과 그 동생(후미히토 친왕)은 제외하고 왕실 가계도를 보면, 양자를 받아들일 여건이 되는 건 그의 여동생인 노부코 친왕비(나루히토 일왕의 당숙모로 1955년생)가 유력하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아소 전 총리로서도 좀더 보수적인 왕을 원할 수도 있겠죠. 전체적으로 보면 양자를 들여와 빨리 결혼을 시켜서 무조건 아들을 낳게 한 다음에, 그 아들을 ‘제대로 된’ 군주로 키우겠다는 (극우파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 양자를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정치가 작동하는 것 아닌가요?
“불가피하게 정치적 선택이 되겠죠. 원래는 바로 그 외척 우려 때문에 양자를 금지했는데, 그 금지를 풀고 양자를 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양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거예요. 600년 전 왕의 후손인 남성에게 갑자기 ‘왕실 양자가 돼라. 너의 역할은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 것이다’라고 하면 누가 그러고 싶겠나요. 그 부모는 허락할까요? 왕실의 양자가 되면 파양도 못하거든요. 제일 불쌍한 건 그 양자이고, 실제로 사람들이 ‘종마론’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려볼수록 이 시나리오에는 허들(장애물)이 너무 많아요. 첫째로는 양자를 못 구할 것이고, 둘째로는 그 남성과 결혼할 여성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아들을 낳는단 보장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15세 이상’ 양자라면 과거가 파헤쳐질 수밖에 없는데, 따져가면서 누군 되고 누군 안 된다 하면 국민들이 받아들이겠나요. 그래도 보수파로선 일단 여제론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 극우 세력은 아이코 공주라는 특정 인물의 즉위를 반대하는 것과 여성을 반대하는 것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여성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왕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정확히는 민간인 남성과 결혼하는 것, 민간인 남자의 ‘씨’를 받아 왕통을 이어가는 것이 안 되는 것이죠. 보수적 가부장 관점에서는 혈통을 잇는 건 남계잖아요. 여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왕이 낳은 아들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남편의 피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관점입니다. 이 정도의 남계 혈통주의는 일본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나 일반 사람들의 삶과도 거리가 멉니다. 그러니 더 황당해하는 것이죠.”
- 그래서 여론이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추가로 논란이 될 여지는 무엇인가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1947년 헌법을 개정하며 군주제 역시 ‘상징천황제’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헌법 1조에 ‘천황의 지위는 국민들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했는데, 이번 개정은 국민 총의를 따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의 총의’라고 하면 여왕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그걸 의식했는지 다카이치 총리도 계속해서 ‘입법부의 총의’라고 했습니다. 헌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입법부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임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참의원에서 많은 야당 의원이 반대하면서 입법부의 총의도 아니게 됐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 일왕도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되면 좋겠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죠.”
- 사사롭게 보면 왕의 가족에 관한 결정인데, 왕족 당사자한테 상의를 하긴 했을까요?
“절대 안 물어보죠. 이 사안은 입법부가 결정하는 일입니다. 천황제가 없는 한국에선 이해하기가 힘든데, 일본 우파들은 ‘왕족은 일반인과 달라 기본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왕족은 ‘상징’과 ‘존재’만 하고 개인으로서 권리는 갖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국가를 위해 평생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봉사만 하는 사람들로 보는 거죠. 그래서 지금 왕이 ‘특별히 한 말씀’을 하셨는데 무시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 불경 아닌가요.”
-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여성에 비세습정치인이라는 건 자민당 내에서 살아남기 굉장히 힘든 조건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굉장히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고요. 자신을 내각에 등용해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정치적 지주이자 은사입니다. 야스쿠니신사를 당당하게 참배하는 모습 등으로 주목을 끌어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해왔습니다.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프레임은 총리가 되고 나서 사후적으로 붙여진 프레임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1990년대 정계에 진출했을 때부터 부부별성 반대론자의 선두였거든요. 당리당론에 따라 부부별성을 반대하게 된 게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신념입니다. 아마 올 가을쯤 부부별성을 방지하기 위한 ‘구성(결혼 전 성)활용법’이 통과될 것입니다.”
- ‘여성 총리가 여성이 왕이 되는 것을 막았다’는 프레임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보면 다카이치 총리는 황실전범 개정을 추진하려는 극우 세력의 도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도 물론 강경보수와 입장이 상충하는 왕실이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그에게 황실전범 개정은 주요 사안이 아니었거든요. 자민당 내 강경보수 세력이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를 이용해 밀어붙였고 총리는 협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총리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죠. 총리를 국민이 선출하지 않는 내각제의 특성상, 몰락의 길이 (대통령제보다) 훨씬 빠르거든요. 일본은 매주 발표되는 지지율이 정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총리는 대체로 자민당 내부 권력구조에서 다양한 세력을 통합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총리 혼자서 큰 힘을 갖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 자신의 주요 의제도 아닌데 여론에 반하는 개정을 왜 추진했을까요?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 기반은 극우 보수입니다. 또 (가부장적인) 통일교의 지지를 많이 받기도 했고요. 과거의 천황제로 돌아가길 원하는 세력을 무시할 수가 없으니 자신에게 중요한 의제가 아닐 뿐 반대할 이유도 딱히 없습니다. 또 사실 현재 일본의 정치 세력 중 오히려 왕실이 진보적이거든요. 정치적 역할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하지만, 예를 들어 오키나와를 매년 방문한다든지 과거 일본이 점령한 지역에 가서 참배를 한다든지 하면서 행동으로 메시지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이 급격하게 우경화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왕실이 일부 수행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파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자민당은 창립목적부터가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거든요.”
- 여성 리더이지만 여성인권에 특별히 나서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카이치 총리가 나오면서 젠더평등이나 여성인권은 명백히 후퇴했습니다. 보통 보수 쪽 여성 리더는 성폭력 문제 개선 같은, 여성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역할을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다카이치 총리는 그런 것이 거의 없습니다. 거기다 황실전범도 이번처럼 개정했고, 부부별성도 반대하는 등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는데다 인권감수성도 부족합니다. 본인의 개인사를 드러내는 메시지는 오히려 여성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0~3시간 잔다’, ‘청소·빨래하고 손수건에 속옷까지 다림질했다’ 등의 메시지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여성의 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간 게 아니라 ‘난 다 할 수 있는 사람’, ‘바깥 일 한다고 남편을 소홀히하지 않는 여성’이라는 식으로 갔어요. 젠더 규범을 강화하며 오히려 반동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 여론조사에서는 여성·여계 승계에 관한 인식이 긍정적입니다. 성평등 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이미 2005년 크게 이슈가 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왕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큰 반대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 사회 전체의 성평등 인식보다는 오히려 왕실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고요. 거꾸로 생각하면, 만약 여왕이 나온다면 그 사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 총리가 나왔을 때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의 총의에 의해 결정되는 왕이 여성이라면 이제 ‘여성이 못 하는 건 없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일본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 이번 개정이 일본 사회에 어떠한 메시지를 던질까요?
“대부분의 일본 국민이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번 결정이 옳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나요? 양자 입양을 둘러싼 구체적 논의가 나올수록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 시나리오는 실현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실제로 남성 양자가 실현된다면 ‘여성은 도구’라는 가치관이 일본 사회에서 계속해서 힘을 갖게 되겠지요. 현재로선 양쪽 길이 다 열려있고, 이번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좀더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향후 지켜볼 만한 지점은 무엇일까요?
“지난번 왕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 것도 파장이 엄청났습니다. 앞으로 그런 정도의 언급이나 행동을 할 것인지 두고 봐야 될 것 같고요. 황실전범 부대조항에 ‘앞으로 논의를 계속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 조항이 실천될지도 봐야 합니다. 다만 일본 정치에선 왕실과 내각이란 두 바퀴가 모두 중요한데, 현재는 두 바퀴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앞으로 갈등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왕실이 우경화되거나 여러 이유로 망가지게 되면 일본 정치 전체가 더 빠르게 우경화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믿음이 없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들. 먹고 마시며 다니다가 마주치는 뜻밖의 성스러움. 거창하지 않아도 일상에 숨어 있는 작고 거룩한 순간들을 만나봅니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노란 커스터드. 카페 진열장에서 가장 익숙한 디저트 중 하나가 된 에그타르트입니다. 마카오 여행에서 반드시 먹어야 할 디저트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에그타르트는 이제 전국 어디서나 소문난 맛집을 찾을 수 있는 보편적 디저트가 됐습니다. 에그타르트의 족보를 좀 더 찾아 올라가면 마카오를 지배했던 포르투갈에 가 닿습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포르투갈 수도원 주방이지요.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 말로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라고 합니다. 포르투갈에서도 원조로 알려진 곳은 리스본에 있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이라는 곳입니다. 지금도 포르투갈 관광 안내 정보를 보면 이곳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로 나와 있습니다.
에그타르트와 수도원의 인연은 19세기 포르투갈 격변기에서 시작됩니다. 포르투갈에선 1820년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후 왕정이 폐지되는데, 오랫동안 왕실의 도움과 보호를 받던 교회와 수도원도 존립 기반을 잃게 되었지요. 급기야 1834년 포르투갈의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은 폐쇄되기에 이르렀고 성직자들은 수도원을 떠나야 했어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던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마찬가지였지요.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되면서 수도사들은 생계수단을 잃고 맙니다. 수도원이 문을 닫자 이곳에서 전해지던 레시피는 민간에 넘겨졌고 대중적인 디저트로 퍼지게 됐습니다. 포르투갈 일간지 푸블리코(2011년 9월30일자)를 보면 수도원이 문을 닫으면서 수도원 안에 있던 과자 제조법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 제조법을 넘겨받은 곳이 설탕을 정제하던 회사였어요. 이 회사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에그타르트 가게를 열었는데 바로 ‘파스테이스 드 벨렝’입니다.
이런 부분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처음에 수도원에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분명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구전되는 이야기 중에는 수도원에서 수도복과 제의에 빳빳한 풀을 먹이는데 달걀흰자가 많이 사용되면서 남은 노른자를 버리지 않기 위해 설탕과 섞어 만든 과자가 에그타르트의 기원이 됐다는 설도 있어요. 와인을 맑게 하는데도 흰자가 사용되는데 남은 노른자를 수도원에 건넸다는 설명도 있지요. 하지만 이런 부분을 두고 현대 음식사가들 사이에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널리 전해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문헌 기록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수도원과 디저트의 관계가 근거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수도원은 수도자들이 기도만 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며 자립생활을 하는 경제 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짓고 음식과 약, 술을 연구하고 만들어 팔던 곳도 수도원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전통 디저트인 ‘텐투갈’은 그 관계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포르투갈 중부 지역의 작은 마을 텐투갈에서 나온 이 디저트는 얇은 종이처럼 늘인 반죽 안에 달걀 노른자와 설탕으로 만든 소를 넣은 과자입니다. 17세기 성모탄생수녀원 기록에도 이미 이 디저트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는 것이지요. 19세기 후반 이 지역에서 발행되던 신문 ‘코님브리센세’(Conimbricense)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텐투갈에는 카르멜회 수녀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유명한 텐투갈 페이스트리가 만들어지며, 일생에 한 번은 꼭 먹어봐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러고 보면 ‘평생 한 번은 먹어봐야 할~’ 식의 기사는 19세기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나 봅니다.
에그타르트와 텐투갈은 포르투갈 수도원 디저트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역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많은 디저트가 있습니다. 오보스 몰레스(Ovos Moles)를 비롯해 수녀의 배라는 뜻의 ‘바리가 드 프레이라’(Barriga de Freira), 천사의 턱이라는 의미를 가진 ‘파푸스 드 안주’(Papos de Anjo), 천국의 베이컨이라는 의미를 가진 ‘토시뉴 두 세우’(Toucinho do Ceu) 등 이름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것들이 많지요.
카페에서 집어드는 에그타르트를 보면서 수도원 문화를 떠올리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수백 년간 가톨릭 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이런 달콤한 간식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수도원의 시간과 노동이 남긴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 10명 중 9명이 7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3명 중 2명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 것으로 조사됐다.
4일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서울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은 약 2400명이다. 이중 51% 이상이 80대 이상이다. 70대도 39%로 전체의 91%가 70대 이상 고령층이다. 이들은 폐지를 수집하는 이유로 ‘생계비 마련’(67%)을 가장 많이 꼽았다.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의 절반 이상(59%)은 폐지 수집 외 다른 일자리에 참여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혼자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55%)’가 가장 많았다. ‘익숙한 일이어서’라고 답한 어르신도 25%를 차지했다.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더라도 폐지 수집을 계속하겠다는 응답도 65.5%에 달했다.
서울시는 어르신들이 보다 안전한 작업 여건 아래서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폐지 수집 어르신 일자리 사업단’을 운영 중이다. 어르신이 수집한 폐지를 지정 판매처에 가져가면 폐지 판매 대금에 보조금을 더해 급여를 지급하는 공공일자리 사업이다. 참여 어르신은 기존 폐지 판매 수입의 약 2배 수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서울 폐지 수집 어르신 가운데 57.5%(1382명)는 일자리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는 “폐지 수집을 일률적으로 중단하도록 하기보다 어르신들이 익숙한 활동을 안전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사업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원시스템에 등록된 폐지 수집 어르신이 일하다 사망하거나 후유장애·부상 등 피해를 입었을 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전보험 가입을 지원한다. 모자·쿨토시·쿨타올·넥쿨러·식염포도당 으로 구성된 폭염예방키트도 제공한다. 경량 리어카 300대, 야광조끼 1558개, 안전모 1141개, 리어카 부착조명 871개 등도 지급했다.
건강관리가 필요한 어르신에게는 보건소 방문건강관리 인력이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상담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에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이날 오전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구 효창동 일대 골목을 찾아 폐지 수집 어르신 집중 돌봄 캠페인에 참여했다. 서울 전역 자원봉사 활동가 767명이 폐지 수집 어르신 1000명에게 직접 폭염 예방 물품을 전달하고 안부와 건강 상태를 살피는 캠페인으로,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
오 시장은 “폭염 대책은 무더위 쉼터와 그늘막 같은 시설 확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더위 속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 보호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특히 골목과 이면 도로처럼 행정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현장까지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민심은 싸늘하다. 개정 후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지지율은 처음으로 50% 이하로 추락했다. 여론조사에선 국민 70~80%가 여성이 왕이 되는 것을 지지했다. 대중적 선호도가 높은 왕의 친딸 대신 갑자기 등장한 36~38촌 남성을 일본 국민이 차기 군주로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플랫]일본, ‘옛 남성 왕족 입적’ 법안 제출에…“여성 왕위 배제” 비판
그렇다면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왜 민심과 충돌하길 택했을까. 여기에는 ‘여성 총리가 여성이 왕이 되는 것을 막았다’ 이상의 ‘장기 시나리오’가 있다고 신기영 일본 국립 오차노미즈여대 교수는 분석한다. 묘하게 다른 자민당과 일본 왕실의 노선, 과거의 영광을 갈망하는 극우, 여계 세습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주의 등이 이 시나리오의 배후에 자리한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6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신기영 교수를 만나 왜 지금 ‘만세일계 남계 전통’이란 구호가 다시 등장했는지, 이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있는지에 관해 들었다.
- 황실전범 개정 이후 일본 분위기는 어떤가요?
“자민당 내 보통의 우파 정치인들은 2005년 고이즈미 정권 시절 나온 ‘황실전범에 관한 전문가회의 보고서’에서 여제를 인정할 수 있다고 결론을 냈고, 정부도 그것을 받아들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 히사이토 친왕(왕자)이 태어나며 관련 논의가 중단됐지요.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남성·남계만 계승한다고 하니 생소하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현 왕의 딸인 아이코 내친왕(공주)이 어릴 때부터 인기가 많았던데다 일본이 모델로 삼는 유럽 왕가에서도 여왕이 있기 때문에, 대체적인 일본 사회의 분위기도 그렇게 가고 있었습니다. (이번 개정으로) 아이코 쪽으로 가는 분위기가 막힌 것입니다.”
- 그렇듯 갑작스러운 황실전범 개정이 2026년 중반이라는 시점에 구체화·실행된 배경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다카이치 총리가 정권을 잡으면서 자민당과 오래 연립정권을 이뤘던 공명당이 연정에서 탈퇴했습니다. 자민당이 정치자금 스캔들 해결을 미룬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기본적으로 공명당은 평화주의이고, 부부별성제도 찬성하는 등 다카이치 총리와는 정치적 노선이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 신자유주의와 보수적 안보정책을 표방하는 ‘차세대 남성 보수’ 같은 일본유신회가 들어오면서 연정 내에서 이런 황당한 질주를 막을 존재가 없어진 것이죠. 거기다 지난 2월 총선에서 자민당이 크게 이겼고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도 굉장히 높았습니다(70% 상회). 여제론으로 천황제가 흔들리는 것을 불안해하고 일본의 옛 영광을 되찾고 싶은 극우들의 입장에선 이러한 정치 환경이 형성된 지금이 딱 적기입니다. 이참에 남계 전통을 확실하게 못 박아야겠다고 나선 것이죠.”
- ‘만세일계’라는 논리와 표현은 실제로 자주 쓰이나요?
“사어에 가깝습니다. 일본에 있었던 지난 20년 동안 일상에서 들어본 적이 없어요. 만세일계란 제국주의와 함께 폐기된 구 헌법에 나오는 말이라서, 제국주의 시절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만세일계 자체가 메이지유신으로 일본이 근대국가로 발돋움하며 가부장적 법체계를 만들 때 나온 새로운 ‘전통’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실제 왕실이 만세일계도 아니었고 8명의 여왕 중 강력한 권한을 가진 여왕도 많았다고 말해요. 그런데도 현 왕실의 후손이 대부분 공주이기 때문에 이를 위기라고 본 이들이 지난 7월 갑자기 그 말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차기 왕의 외척이 되려는 구상으로 뒤에서 영향력을 행사했으리란 관측이 나오는데요(아소 전 총리는 노부코 친왕비의 오빠). 그럴 듯한 이야기인가요?
“아소 전 총리가 그것을 노렸는지 안 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객관적 상황은 그렇게 보입니다. 현 왕과 그 동생(후미히토 친왕)은 제외하고 왕실 가계도를 보면, 양자를 받아들일 여건이 되는 건 그의 여동생인 노부코 친왕비(나루히토 일왕의 당숙모로 1955년생)가 유력하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이 의심하는 것입니다. 아소 전 총리로서도 좀더 보수적인 왕을 원할 수도 있겠죠. 전체적으로 보면 양자를 들여와 빨리 결혼을 시켜서 무조건 아들을 낳게 한 다음에, 그 아들을 ‘제대로 된’ 군주로 키우겠다는 (극우파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 양자를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정치가 작동하는 것 아닌가요?
“불가피하게 정치적 선택이 되겠죠. 원래는 바로 그 외척 우려 때문에 양자를 금지했는데, 그 금지를 풀고 양자를 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 문제는 양자가 되고 싶은 사람도 없을 거예요. 600년 전 왕의 후손인 남성에게 갑자기 ‘왕실 양자가 돼라. 너의 역할은 결혼하고 아들을 낳는 것이다’라고 하면 누가 그러고 싶겠나요. 그 부모는 허락할까요? 왕실의 양자가 되면 파양도 못하거든요. 제일 불쌍한 건 그 양자이고, 실제로 사람들이 ‘종마론’이라고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보기엔 거의 불가능한 시나리오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려볼수록 이 시나리오에는 허들(장애물)이 너무 많아요. 첫째로는 양자를 못 구할 것이고, 둘째로는 그 남성과 결혼할 여성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꼭 아들을 낳는단 보장도 없습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요즘처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시대에 ‘15세 이상’ 양자라면 과거가 파헤쳐질 수밖에 없는데, 따져가면서 누군 되고 누군 안 된다 하면 국민들이 받아들이겠나요. 그래도 보수파로선 일단 여제론을 차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 극우 세력은 아이코 공주라는 특정 인물의 즉위를 반대하는 것과 여성을 반대하는 것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여성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왕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정확히는 민간인 남성과 결혼하는 것, 민간인 남자의 ‘씨’를 받아 왕통을 이어가는 것이 안 되는 것이죠. 보수적 가부장 관점에서는 혈통을 잇는 건 남계잖아요. 여계 자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왕이 낳은 아들이라 하더라도 결국 그 남편의 피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관점입니다. 이 정도의 남계 혈통주의는 일본의 전체적인 사회 분위기나 일반 사람들의 삶과도 거리가 멉니다. 그러니 더 황당해하는 것이죠.”
- 그래서 여론이 부정적인 것 같습니다. 추가로 논란이 될 여지는 무엇인가요?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1947년 헌법을 개정하며 군주제 역시 ‘상징천황제’로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헌법 1조에 ‘천황의 지위는 국민들의 총의에 근거한다’고 했는데, 이번 개정은 국민 총의를 따랐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국민들의 총의’라고 하면 여왕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그걸 의식했는지 다카이치 총리도 계속해서 ‘입법부의 총의’라고 했습니다. 헌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입법부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임을 내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참의원에서 많은 야당 의원이 반대하면서 입법부의 총의도 아니게 됐습니다.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 일왕도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되면 좋겠다’고 간접적으로 비판했죠.”
- 사사롭게 보면 왕의 가족에 관한 결정인데, 왕족 당사자한테 상의를 하긴 했을까요?
“절대 안 물어보죠. 이 사안은 입법부가 결정하는 일입니다. 천황제가 없는 한국에선 이해하기가 힘든데, 일본 우파들은 ‘왕족은 일반인과 달라 기본권을 보장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왕족은 ‘상징’과 ‘존재’만 하고 개인으로서 권리는 갖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국가를 위해 평생 그 자리에 그대로 있으면서 봉사만 하는 사람들로 보는 거죠. 그래서 지금 왕이 ‘특별히 한 말씀’을 하셨는데 무시했잖아요. 어떻게 보면 이것이 불경 아닌가요.”
- 다카이치 사나에라는 인물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여성에 비세습정치인이라는 건 자민당 내에서 살아남기 굉장히 힘든 조건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굉장히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고요. 자신을 내각에 등용해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정치적 지주이자 은사입니다. 야스쿠니신사를 당당하게 참배하는 모습 등으로 주목을 끌어 자신의 지위를 확고하게 해왔습니다.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프레임은 총리가 되고 나서 사후적으로 붙여진 프레임입니다. 다카이치 총리는 1990년대 정계에 진출했을 때부터 부부별성 반대론자의 선두였거든요. 당리당론에 따라 부부별성을 반대하게 된 게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신념입니다. 아마 올 가을쯤 부부별성을 방지하기 위한 ‘구성(결혼 전 성)활용법’이 통과될 것입니다.”
- ‘여성 총리가 여성이 왕이 되는 것을 막았다’는 프레임에 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떻게 보면 다카이치 총리는 황실전범 개정을 추진하려는 극우 세력의 도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다카이치 총리도 물론 강경보수와 입장이 상충하는 왕실이 마음에 들진 않겠지만, 그에게 황실전범 개정은 주요 사안이 아니었거든요. 자민당 내 강경보수 세력이 다카이치 총리의 인기를 이용해 밀어붙였고 총리는 협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총리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두고 봐야죠. 총리를 국민이 선출하지 않는 내각제의 특성상, 몰락의 길이 (대통령제보다) 훨씬 빠르거든요. 일본은 매주 발표되는 지지율이 정권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총리는 대체로 자민당 내부 권력구조에서 다양한 세력을 통합할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총리 혼자서 큰 힘을 갖기가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 자신의 주요 의제도 아닌데 여론에 반하는 개정을 왜 추진했을까요?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 기반은 극우 보수입니다. 또 (가부장적인) 통일교의 지지를 많이 받기도 했고요. 과거의 천황제로 돌아가길 원하는 세력을 무시할 수가 없으니 자신에게 중요한 의제가 아닐 뿐 반대할 이유도 딱히 없습니다. 또 사실 현재 일본의 정치 세력 중 오히려 왕실이 진보적이거든요. 정치적 역할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매우 조심하지만, 예를 들어 오키나와를 매년 방문한다든지 과거 일본이 점령한 지역에 가서 참배를 한다든지 하면서 행동으로 메시지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이 급격하게 우경화되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왕실이 일부 수행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우파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자민당은 창립목적부터가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당이거든요.”
- 여성 리더이지만 여성인권에 특별히 나서지 않는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다카이치 총리가 나오면서 젠더평등이나 여성인권은 명백히 후퇴했습니다. 보통 보수 쪽 여성 리더는 성폭력 문제 개선 같은, 여성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하는 역할을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다카이치 총리는 그런 것이 거의 없습니다. 거기다 황실전범도 이번처럼 개정했고, 부부별성도 반대하는 등 여성과 관련된 이야기는 없는데다 인권감수성도 부족합니다. 본인의 개인사를 드러내는 메시지는 오히려 여성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0~3시간 잔다’, ‘청소·빨래하고 손수건에 속옷까지 다림질했다’ 등의 메시지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여성의 부담을 경감하는 방향으로 간 게 아니라 ‘난 다 할 수 있는 사람’, ‘바깥 일 한다고 남편을 소홀히하지 않는 여성’이라는 식으로 갔어요. 젠더 규범을 강화하며 오히려 반동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입니다.”
- 여론조사에서는 여성·여계 승계에 관한 인식이 긍정적입니다. 성평등 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이미 2005년 크게 이슈가 됐기 때문에, 사람들이 여왕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큰 반대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습니다. 일본 사회 전체의 성평등 인식보다는 오히려 왕실이기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고요. 거꾸로 생각하면, 만약 여왕이 나온다면 그 사실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여성 총리가 나왔을 때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일본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의 총의에 의해 결정되는 왕이 여성이라면 이제 ‘여성이 못 하는 건 없다’고 말할 수 있잖아요. 일본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줄 것입니다.”
- 이번 개정이 일본 사회에 어떠한 메시지를 던질까요?
“대부분의 일본 국민이 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번 결정이 옳다고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나요? 양자 입양을 둘러싼 구체적 논의가 나올수록 국민이 납득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 시나리오는 실현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만약 실제로 남성 양자가 실현된다면 ‘여성은 도구’라는 가치관이 일본 사회에서 계속해서 힘을 갖게 되겠지요. 현재로선 양쪽 길이 다 열려있고, 이번을 계기로 일본 사회가 좀더 진지하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향후 지켜볼 만한 지점은 무엇일까요?
“지난번 왕이 조심스럽게 한마디 한 것도 파장이 엄청났습니다. 앞으로 그런 정도의 언급이나 행동을 할 것인지 두고 봐야 될 것 같고요. 황실전범 부대조항에 ‘앞으로 논의를 계속한다’고 했기 때문에 그 조항이 실천될지도 봐야 합니다. 다만 일본 정치에선 왕실과 내각이란 두 바퀴가 모두 중요한데, 현재는 두 바퀴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 앞으로 갈등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왕실이 우경화되거나 여러 이유로 망가지게 되면 일본 정치 전체가 더 빠르게 우경화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믿음이 없어도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들. 먹고 마시며 다니다가 마주치는 뜻밖의 성스러움. 거창하지 않아도 일상에 숨어 있는 작고 거룩한 순간들을 만나봅니다.
바삭한 페이스트리. 한 입 베어 물면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노란 커스터드. 카페 진열장에서 가장 익숙한 디저트 중 하나가 된 에그타르트입니다. 마카오 여행에서 반드시 먹어야 할 디저트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에그타르트는 이제 전국 어디서나 소문난 맛집을 찾을 수 있는 보편적 디저트가 됐습니다. 에그타르트의 족보를 좀 더 찾아 올라가면 마카오를 지배했던 포르투갈에 가 닿습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포르투갈 수도원 주방이지요.
포르투갈에서 태어난 에그타르트는 포르투갈 말로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라고 합니다. 포르투갈에서도 원조로 알려진 곳은 리스본에 있는 ‘파스테이스 드 벨렝’(Pasteis de Belem)이라는 곳입니다. 지금도 포르투갈 관광 안내 정보를 보면 이곳은 빼놓을 수 없는 코스로 나와 있습니다.
에그타르트와 수도원의 인연은 19세기 포르투갈 격변기에서 시작됩니다. 포르투갈에선 1820년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납니다. 이후 왕정이 폐지되는데, 오랫동안 왕실의 도움과 보호를 받던 교회와 수도원도 존립 기반을 잃게 되었지요. 급기야 1834년 포르투갈의 모든 수도원과 수녀원은 폐쇄되기에 이르렀고 성직자들은 수도원을 떠나야 했어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던 제로니무스 수도원도 마찬가지였지요.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되면서 수도사들은 생계수단을 잃고 맙니다. 수도원이 문을 닫자 이곳에서 전해지던 레시피는 민간에 넘겨졌고 대중적인 디저트로 퍼지게 됐습니다. 포르투갈 일간지 푸블리코(2011년 9월30일자)를 보면 수도원이 문을 닫으면서 수도원 안에 있던 과자 제조법이 세상에 알려졌고, 이 제조법을 넘겨받은 곳이 설탕을 정제하던 회사였어요. 이 회사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옆에 에그타르트 가게를 열었는데 바로 ‘파스테이스 드 벨렝’입니다.
이런 부분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이야기입니다만 처음에 수도원에서 어떻게,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에 관한 분명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구전되는 이야기 중에는 수도원에서 수도복과 제의에 빳빳한 풀을 먹이는데 달걀흰자가 많이 사용되면서 남은 노른자를 버리지 않기 위해 설탕과 섞어 만든 과자가 에그타르트의 기원이 됐다는 설도 있어요. 와인을 맑게 하는데도 흰자가 사용되는데 남은 노른자를 수도원에 건넸다는 설명도 있지요. 하지만 이런 부분을 두고 현대 음식사가들 사이에선 논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널리 전해진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만한 문헌 기록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도 수도원과 디저트의 관계가 근거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수도원은 수도자들이 기도만 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신앙을 지키며 자립생활을 하는 경제 공동체이기도 했습니다. 농사를 짓고 음식과 약, 술을 연구하고 만들어 팔던 곳도 수도원이었습니다. 포르투갈 전통 디저트인 ‘텐투갈’은 그 관계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포르투갈 중부 지역의 작은 마을 텐투갈에서 나온 이 디저트는 얇은 종이처럼 늘인 반죽 안에 달걀 노른자와 설탕으로 만든 소를 넣은 과자입니다. 17세기 성모탄생수녀원 기록에도 이미 이 디저트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는 것이지요. 19세기 후반 이 지역에서 발행되던 신문 ‘코님브리센세’(Conimbricense)가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텐투갈에는 카르멜회 수녀원이 있는데 이곳에서 유명한 텐투갈 페이스트리가 만들어지며, 일생에 한 번은 꼭 먹어봐야 한다”고 썼습니다. 그러고 보면 ‘평생 한 번은 먹어봐야 할~’ 식의 기사는 19세기나 지금이나 비슷하게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나 봅니다.
에그타르트와 텐투갈은 포르투갈 수도원 디저트의 일부일 뿐입니다. 지역마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는 많은 디저트가 있습니다. 오보스 몰레스(Ovos Moles)를 비롯해 수녀의 배라는 뜻의 ‘바리가 드 프레이라’(Barriga de Freira), 천사의 턱이라는 의미를 가진 ‘파푸스 드 안주’(Papos de Anjo), 천국의 베이컨이라는 의미를 가진 ‘토시뉴 두 세우’(Toucinho do Ceu) 등 이름만으로도 흥미를 끄는 것들이 많지요.
카페에서 집어드는 에그타르트를 보면서 수도원 문화를 떠올리긴 쉽지 않아요. 하지만 수백 년간 가톨릭 문화의 영향을 받아온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이런 달콤한 간식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수도원의 시간과 노동이 남긴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서울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 10명 중 9명이 70대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3명 중 2명은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 것으로 조사됐다.
4일 서울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서울에서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은 약 2400명이다. 이중 51% 이상이 80대 이상이다. 70대도 39%로 전체의 91%가 70대 이상 고령층이다. 이들은 폐지를 수집하는 이유로 ‘생계비 마련’(67%)을 가장 많이 꼽았다.
폐지를 수집하는 어르신의 절반 이상(59%)은 폐지 수집 외 다른 일자리에 참여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다른 일을 하지 않는 이유는 ‘혼자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서(55%)’가 가장 많았다. ‘익숙한 일이어서’라고 답한 어르신도 25%를 차지했다.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더라도 폐지 수집을 계속하겠다는 응답도 65.5%에 달했다.
서울시는 어르신들이 보다 안전한 작업 여건 아래서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도록 ‘폐지 수집 어르신 일자리 사업단’을 운영 중이다. 어르신이 수집한 폐지를 지정 판매처에 가져가면 폐지 판매 대금에 보조금을 더해 급여를 지급하는 공공일자리 사업이다. 참여 어르신은 기존 폐지 판매 수입의 약 2배 수준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서울 폐지 수집 어르신 가운데 57.5%(1382명)는 일자리 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는 “폐지 수집을 일률적으로 중단하도록 하기보다 어르신들이 익숙한 활동을 안전하게 이어갈 수 있도록 사업 참여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원시스템에 등록된 폐지 수집 어르신이 일하다 사망하거나 후유장애·부상 등 피해를 입었을 때 보험금을 받을 수 있도록 안전보험 가입을 지원한다. 모자·쿨토시·쿨타올·넥쿨러·식염포도당 으로 구성된 폭염예방키트도 제공한다. 경량 리어카 300대, 야광조끼 1558개, 안전모 1141개, 리어카 부착조명 871개 등도 지급했다.
건강관리가 필요한 어르신에게는 보건소 방문건강관리 인력이 직접 찾아가거나 전화로 상담하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서울에 처음으로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이날 오전 오세훈 서울시장은 용산구 효창동 일대 골목을 찾아 폐지 수집 어르신 집중 돌봄 캠페인에 참여했다. 서울 전역 자원봉사 활동가 767명이 폐지 수집 어르신 1000명에게 직접 폭염 예방 물품을 전달하고 안부와 건강 상태를 살피는 캠페인으로,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
오 시장은 “폭염 대책은 무더위 쉼터와 그늘막 같은 시설 확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더위 속에서 생활하고 일하는 시민들을 직접 찾아가 보호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며 “특히 골목과 이면 도로처럼 행정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현장까지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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