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OGIN
  • SIGN UP
  • 1:1문의

여성 배우에 “최고의 팔근육”…맷 데이먼이 극찬한 실력자 정체 [이윤정 기자의 소소월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91회 작성일 26-08-08 13:48

본문

“내가 본 최고의 팔근육.” 배우 맷 데이먼의 한마디에 세계 영화 애호가들이 한 여성의 이름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캐나다 출신 스턴트 배우 데빈 달튼(35). 얼굴보다 근육이 먼저 알려진, 조금은 특별한 배우다.
키 137㎝의 작은 체구인 달튼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에서 맷 데이먼의 스턴트 더블을 맡았다. 영화에는 오디세우스(맷 데이먼) 일행이 거인족 라이스트리곤과 맞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제작진은 거인들이 더욱 압도적으로 보이도록 작은 체구의 스턴트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달튼 역시 이런 이유로 합류했다. 체구는 작지만, 맷 데이먼의 팔을 대신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단련된 팔과 어깨 근육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은 영화 홍보 인터뷰에서 달튼을 떠올리며 “내가 본 최고의 팔근육”이라고 극찬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달튼은 영국 일단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맷 데이먼이 내 팔을 칭찬했다는 사실이 정말 특별했다”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휴대전화가 폭발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은 내 팔근육만의 팬클럽이 생긴 것 같다”며 웃었다.
달튼은 원래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했다. 9살부터 연기를 했지만 점차 스턴트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그는 단순히 위험한 액션을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에타이, 주짓수, 요가, 현대무용, 근력운동을 꾸준히 병행하며 자신의 몸 자체를 연기의 도구로 만들어 왔다.
이번 작품 역시 수개월 동안 별도의 체력훈련을 거쳤다. 그는 “스턴트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라 위험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일”이라며 “좋은 스턴트 배우일수록 위험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달튼이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긴 말은 따로 있다. “우리는 강한 몸으로 성공한 남성은 당연하게 칭찬한다. 그렇다면 여성도 마찬가지로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는 “여자아이들이 강인한 사람이 되는 것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여성성)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이 짧은 인터뷰는 온라인에서도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SNS에는 “여성의 근육도 아름답다”, “이제는 여성의 힘 자체를 인정하는 시대가 왔다”, “근육을 감추지 않아도 되는 롤모델이 생겼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사실 여성의 근육과 신체 능력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남성 못지않은 특별한 여성’이라는 예외적 존재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면, 이제는 여성의 강인한 몸 자체를 하나의 개성과 경쟁력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여성의 몸을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행동하는 주체’로 바꾸기까지는 수십 년에 걸친 도전이 있었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 초창기부터 여성들은 몸으로 액션 장면을 만들어냈다. 다만 오늘날처럼 ‘여성 액션 배우’라는 이름으로 조명받기보다, 위험한 장면을 소화하는 특별한 존재로 남았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이 헬렌 깁슨(1892~1977)이다. 그는 1910년대부터 활동한 미국 여성 스턴트 배우이자 로데오 선수 출신으로, 당시 여성에게 금기시되던 위험한 액션을 직접 수행했다. 1915년부터 방영된 연속극 <헬렌의 위험한 모험> 에서 주연을 맡은 그는 달리는 기차 위에 올라타거나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 등 위험한 연기를 직접 소화했다. 당시에는 여성이 이런 신체 능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또 다른 초기 여성 액션 스타는 펄 화이트(1889~1938)다. 그는 1914년 공개된 연속극 <폴린의 위험>에서 주연을 맡아 절벽 추락, 폭발, 추격 장면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액션을 직접 연기했다. 특히 이 작품은 매회 주인공 폴린이 위기에 처하고 이를 극복하는 구조로 큰 인기를 끌며, 여성이 액션 서사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영화 산업이 성장하면서 배우와 위험한 연기를 수행하는 전문 인력은 점차 분리되기 시작했다. 특히 자동차 추격, 폭발, 고공 낙하처럼 배우가 직접 감당하기 어려운 장면이 늘어나면서 스턴트라는 전문 영역이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여성 스턴트우먼들은 다시 한 번 영화 속 위험한 순간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았지만, 대부분은 이름 없는 ‘대역’으로 남았다.
스크린 속 주연 배우가 박수를 받을 때, 실제로 몸을 던져 장면을 완성한 여성들은 크레디트 뒤편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일부 여성 스턴트우먼들은 단순히 누군가를 대신하는 존재를 넘어, 뛰어난 신체 능력과 기술로 자신만의 역사를 만들었다.
그 시작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배우가 키티 오닐(1946~2018)이다. 미국 출신의 스턴트우먼이자 스피드 기록 보유자인 그는 어린 시절 질병으로 청력을 잃었지만, 뛰어난 운동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다이빙 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이후 할리우드 스턴트 업계에 뛰어들어 영화와 TV에서 폭발 장면, 자동차 액션, 고공 낙하 등 위험한 장면을 직접 수행했다.
특히 1976년 12월, 그는 제트 추진 자동차 ‘SMI 모티베이터’를 몰고 미국 오리건주 알보드 사막에서 시속 약 825㎞(512.7mph)를 기록하며 여성 지상 속도 기록을 세웠다. 이는 일반 자동차가 아니라 제트 엔진으로 추진되는 특수 차량을 이용한 기록으로, 당시 여성으로서는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극한의 속도 영역이었다. 특히 남성 중심이었던 스피드 경쟁과 스턴트 업계에서 여성도 극한의 신체 능력을 가진 전문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 키티 오닐은 이후 여성 스턴트우먼이 단순히 배우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고 기술을 수행하는 전문가라는 인식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뉴질랜드 출신 조이 벨(47)은 현대 여성 스턴트우먼의 위상을 바꾼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체조와 무술 경험을 바탕으로 스턴트 업계에 들어온 그는 2003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킬 빌: Vol.1>에서 우마 서먼의 스턴트 더블을 맡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후 2007년 타란티노 감독의 <데스 프루프>에서는 본인 이름 그대로 출연해 배우로도 활동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달리는 자동차 보닛 위에 몸을 묶은 채 질주하는 위험한 장면을 직접 소화했다. 이 장면은 “스턴트우먼이 누구의 대역인가”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퍼포머가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대표 사례가 됐다.
조이 벨은 오랫동안 배우 뒤에 숨겨져 있던 스턴트우먼이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가진 창작자로 전면에 등장한 사례로 기억됐다. 이후 그는 스턴트 코디네이터와 배우를 오가며 활동하며 여성 액션 전문가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스턴트우먼들이 위험한 장면을 몸으로 개척했다면, 스크린 앞 여성 배우들은 ‘여성의 몸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바꿔왔다.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주로 남성 주인공의 구출 대상이거나 서사의 보조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70~1990년대를 거치며 여성은 더 이상 보호받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싸우고 생존하는 주체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바로 시고니 위버(76)다. 1979년 개봉한 영화 <에일리언>에서 그는 우주선 승무원 리플리 역을 맡아 기존 여성 캐릭터의 공식을 깨뜨렸다. 처음에는 평범한 승무원처럼 보였던 리플리는 외계 생명체의 습격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인물로 그려졌고, 남성 동료들이 차례로 쓰러지는 상황에서도 냉정한 판단력과 강한 생존 본능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특히 1986년 후속작 <에일리언 2>에서는 더욱 강인한 모습으로 변신했다. 군용 장비를 착용하고 무기를 들고 외계 생명체와 맞서는 리플리는 이후 여성 액션 히어로의 원형으로 평가받았다. 당시만 해도 여성 주인공이 거대한 액션 서사를 이끄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고, 시고니 위버는 ‘강한 여성 캐릭터’의 새 기준을 만들었다.
1991년 개봉한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은 여성 액션 캐릭터의 변화를 한 단계 더 밀어붙였다. 린다 해밀턴이 연기한 사라 코너는 전작에서 보호받아야 하는 평범한 여성이었지만, 후속작에서는 미래의 인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싸우는 전사로 변했다. 해밀턴은 촬영 전 수개월 동안 웨이트트레이닝, 군사훈련, 사격 훈련을 받으며 체형을 바꿨고, 영화 속에서 강한 팔과 어깨 근육, 탄탄한 체격을 그대로 드러냈다. 철창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 장면,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은 당시 여성 배우에게 기대했던 이미지와 완전히 달랐다. 사라 코너는 “강한 여성”이라는 표현을 넘어, 여성도 신체적 힘과 기술을 통해 서사의 중심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캐릭터가 됐다.
이후 여성 액션 캐릭터의 영역은 더욱 넓어졌다. 홍콩 배우 미셸 여는 1992년 <폴리스 스토리 3>와 2000년 <와호장룡>을 통해 와이어 액션과 무술을 직접 소화하며 여성도 남성 배우 못지않게 몸으로 액션을 표현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우마 서먼은 2003년 <킬 빌 Vol.1>과 2004년 <킬 빌 Vol.2>에서 복수를 위해 싸우는 암살자 ‘더 브라이드’를 연기하며 여성 캐릭터가 액션 서사의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안젤리나 졸리는 2001년 <툼 레이더>에서 강인한 여성 모험가 라라 크로프트를 선보이며 여성 액션 스타의 시대를 열었고, 샤를리즈 테론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와 <아토믹 블론드>(2017)를 통해 실제 훈련으로 완성한 강도 높은 액션 연기의 기준을 끌어올렸다.
이처럼 여성 액션 캐릭터 역사가 ‘여성도 싸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다면, 데빈 달튼의 등장은 또 다른 변화를 보여준다. 그는 여성 캐릭터가 아닌 남성 주인공 맷 데이먼의 스턴트 더블로 선택되며, 강인함이 더 특정 성별의 영역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그의 팔근육이 화제가 된 이유는 단순히 놀라운 신체 능력 때문이 아니다. 오랫동안 남성의 것으로 여겨졌던 힘과 강함이라는 이미지가 이제는 누구의 몸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는 시대의 변화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넓고 도전할 무대는 훨씬 많습니다.”
한국 남녀 프로농구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베테랑 지도자’ 박종천 감독(66·사진)은 요즘 중국 광둥성 포산의 영재학교 체육관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은퇴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그의 도전은 진행 중이다.
박 감독은 지난해 3월부터 중국 광둥성 포산시 영재학교 농구부를 맡아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고교 1학년 선수들을 이끌고 지난해 광둥성 선수권 정상에 올랐고, 올해까지 2연패를 달성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남부 7개 성 대표팀이 출전한 권역대회까지 제패했다. 다음 목표는 9월에 열리는 전국 왕중왕 최강전과 중국 U-16 전국선수권이다.
박 감독은 5일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두 달 정도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는데 계속 성적을 내다 보니 어느덧 여기까지 왔다”고 했다.
박 감독에게 중국은 낯선 무대가 아니다. 2012년 중국 요령성 여자 청소년 대표팀을 지도하며 중국 생활을 시작했다. 국내로 들어와 2014년 하나은행 감독을 맡아 여자프로농구(WKBL) 무대를 누볐고, 방송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이후 지도자로서 마지막 열정을 쏟고 싶다는 마음에 다시 중국행을 택했다.
2018년부터는 후베이성 우한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었고, 지난해부터는 광둥성에서 유망주 육성에 전념하고 있다. 박 감독은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 성적까지 따라오니 지도자로서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왕중왕 최강전과 전국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 중국 청소년 대표팀 코칭스태프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지도자 인생의 마지막 퍼즐을 맞춰보고 싶다”고 했다.
중국 생활에서 가장 큰 무기는 언어였다. 학교 사정상 통역을 둘 수 없었지만, 그동안 틈틈이 공부한 영어와 중국어로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고 있다. 박 감독은 “지도자가 농구만 잘 가르쳐서 되는 시대가 아니다. 언어도 잘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후배 지도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부분이다. 그는 “한국에는 유능한 지도자들이 많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중국은 물론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도 새로운 기회가 계속 생기고 있다”며 “우물 안에서만 경쟁하지 말고, 언어를 준비하고 해외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내 경험이 후배들에게 작은 길잡이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에서 생활하며 느낀 한국 농구의 위상도 전했다. 그는 “중국에서도 한국 농구를 높게 평가한다. 유럽 리그 시스템을 빨리 받아들이고 지도자들도 훌륭하다는 인식이 있다”며 “내가 중국에서 좋은 성적을 내면서 한국 지도자에 대한 관심도 더 커진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미래를 향한다. 광둥성을 넘어 중국 청소년 대표팀, 그리고 더 많은 한국 지도자들의 해외 진출 전도사까지. “세상은 넓고 배울 것도, 도전할 무대도 정말 많습니다.” 박 감독의 ‘제2의 농구 인생’은 오늘도 중국의 한 체육관에서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수원음주운전변호사, 협의이혼, LS증권 사기, 하수구막힘, 웹사이트 상위등록, 용인싱크대막힘, 사이트 상위노출, 의정부형사변호사, 부산이혼전문변호사, 성남상간소송변호사, 종로변기막힘, 피망뉴베가스머니상, 평택하수구막힘, 안산이혼전문변호사, 남양주대형로펌, 탐정자격증, 피망뉴베가스머니상, 인제하수구막힘, 수원개인회생, 코나 리스, 판교치과, 흥신소, 용인상간소송변호사, 웹사이트 상위노출, 남양주학교폭력변호사, BAIRD 사기, 분당강제추행변호사, BMW X5 50E 리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