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 후기리 소각장 분쟁’ 민간업체 손 들어준 대법…지역 주민들 ‘허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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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51회 작성일 26-08-13 14:57본문
충북 청주 청원구 오창읍 후기리 소각장 건립을 두고 5년 넘게 이어진 민간업체와 청주시 소송전에서 대법원이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3일 서원환경(옛 이에스지청원)이 청주시를 상대로 낸 ‘도시관리계획 입안 제안 거부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2002년부터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남촌리에서 매립시설을 운영하던 서원환경은 2015년 3월 폐기물 소각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려햇다. 하지만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혀 진행이 중단됐다. 이에 청주시는 주민 반발을 이유로 소각장을 산단 밖으로 이전하라고 요청했다.
서원환경과 청주시는 같은 해 ‘소각시설과 매립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업무협약에 따라 이 업체는 남촌리에서 인근 오창읍 후기리로 이전을 추진하며 2020년 11월 하루 처리 용량 165t 규모 소각시설과 파·분쇄시설 등을 짓기 위해 청주시에 도시관리계획 입안을 제안했다.
청주시는 이듬해 2월 환경 훼손 우려와 반경 10㎞ 이내에 주거밀집지역 및 학교가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업체는 행정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도시계획을 정하는 건 청주시 재량”이라며 시가 승소했다. 하지만 2심은 “시가 협약으로 협력을 약속해놓고 거부하는 건 신뢰보호 원칙 위반”이라며 업체 손을 들어줬다. 다만 파·분쇄시설 부분은 협약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봐 이 부분은 시가 승소했다.
청주시와 업체는 각각 패소 부분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다만 핵심 시설인 소각장과 달리 파·분쇄시설에 대해서는 청주시의 제동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로 소각시설 건립을 막아섰던 명분이 사라지자, 2019년부터 건립 반대 운동을 벌여온 오창읍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홍성민 오창읍 이장협의회장(전 오창 소각장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통화에서 “몇 년 동안 싸워온 결과가 이렇게 돼 참담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해체됐던 반대 대책위를 다시 구성해 주민들과 함께 본격적인 반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주시가 향후 남은 인허가 절차를 냉철하고 꼼꼼하게 챙겨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중국 경제개혁을 설계하고 집행한 핵심 인사인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12일 사망했다. 향년 98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명의의 부고를 통해 주 전 총리가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1시 6분(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그를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오랜 시련을 견뎌온 충실한 공산주의 전사, 뛰어난 무산계급 혁명가·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1928년 10월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주 전 총리의 부고 기사에서 1987년 상하이시장에 임명된 그가 상하이가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거듭나는 첫걸음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국무원 부총리, 이후 2003년 초까지 총리로 재임한 주 전 총리는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자 청백리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총리 재직 당시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국영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해 중국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WTO 가입 협상을 사실상 총괄하며 중국 시장의 대외 개방을 확대했고, 중국이 세계 경제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중국은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기반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했다.
주 전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재임 시절 “퇴임 이후 인민들이 나를 부패한 관리가 아니라 청렴한 관리로 알아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력한 반부패 행보로 ‘현대판 포청천(包青天)’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에 맞서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관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친인척 관리에도 엄격했다. 친지들의 인사 청탁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직에 진출한 친인척을 승진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고향 창사의 공무원들이 모친의 묘를 새로 단장하려 하자 이를 엄하게 꾸짖고, 친척들에게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경제정책은 성과뿐 아니라 강한 추진력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국내외에서는 그를 ‘중국의 경제 차르’, ‘철면 총리’라고 불렀다. 다만 주 전 총리 자신은 이런 별칭을 두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밝힌 적도 있다.
주 전 총리는 2003년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다. 신화통신은 그가 퇴임 이후에도 중국의 개혁·개방과 반부패 정책을 지지해왔다고 전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13일 서원환경(옛 이에스지청원)이 청주시를 상대로 낸 ‘도시관리계획 입안 제안 거부처분 취소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2002년부터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남촌리에서 매립시설을 운영하던 서원환경은 2015년 3월 폐기물 소각시설을 추가로 설치하려햇다. 하지만 지역 주민 반대에 부딪혀 진행이 중단됐다. 이에 청주시는 주민 반발을 이유로 소각장을 산단 밖으로 이전하라고 요청했다.
서원환경과 청주시는 같은 해 ‘소각시설과 매립장을 다른 곳으로 이전한다’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업무협약에 따라 이 업체는 남촌리에서 인근 오창읍 후기리로 이전을 추진하며 2020년 11월 하루 처리 용량 165t 규모 소각시설과 파·분쇄시설 등을 짓기 위해 청주시에 도시관리계획 입안을 제안했다.
청주시는 이듬해 2월 환경 훼손 우려와 반경 10㎞ 이내에 주거밀집지역 및 학교가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업체는 행정소송을 냈다.
1심에서는 “도시계획을 정하는 건 청주시 재량”이라며 시가 승소했다. 하지만 2심은 “시가 협약으로 협력을 약속해놓고 거부하는 건 신뢰보호 원칙 위반”이라며 업체 손을 들어줬다. 다만 파·분쇄시설 부분은 협약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봐 이 부분은 시가 승소했다.
청주시와 업체는 각각 패소 부분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 역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다만 핵심 시설인 소각장과 달리 파·분쇄시설에 대해서는 청주시의 제동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결로 소각시설 건립을 막아섰던 명분이 사라지자, 2019년부터 건립 반대 운동을 벌여온 오창읍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홍성민 오창읍 이장협의회장(전 오창 소각장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통화에서 “몇 년 동안 싸워온 결과가 이렇게 돼 참담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며 “해체됐던 반대 대책위를 다시 구성해 주민들과 함께 본격적인 반대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청주시가 향후 남은 인허가 절차를 냉철하고 꼼꼼하게 챙겨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중국 경제개혁을 설계하고 집행한 핵심 인사인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12일 사망했다. 향년 98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명의의 부고를 통해 주 전 총리가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1시 6분(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그를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오랜 시련을 견뎌온 충실한 공산주의 전사, 뛰어난 무산계급 혁명가·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1928년 10월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주 전 총리의 부고 기사에서 1987년 상하이시장에 임명된 그가 상하이가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거듭나는 첫걸음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국무원 부총리, 이후 2003년 초까지 총리로 재임한 주 전 총리는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자 청백리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총리 재직 당시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국영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해 중국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WTO 가입 협상을 사실상 총괄하며 중국 시장의 대외 개방을 확대했고, 중국이 세계 경제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중국은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기반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했다.
주 전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재임 시절 “퇴임 이후 인민들이 나를 부패한 관리가 아니라 청렴한 관리로 알아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력한 반부패 행보로 ‘현대판 포청천(包青天)’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에 맞서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관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친인척 관리에도 엄격했다. 친지들의 인사 청탁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직에 진출한 친인척을 승진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고향 창사의 공무원들이 모친의 묘를 새로 단장하려 하자 이를 엄하게 꾸짖고, 친척들에게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경제정책은 성과뿐 아니라 강한 추진력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국내외에서는 그를 ‘중국의 경제 차르’, ‘철면 총리’라고 불렀다. 다만 주 전 총리 자신은 이런 별칭을 두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밝힌 적도 있다.
주 전 총리는 2003년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다. 신화통신은 그가 퇴임 이후에도 중국의 개혁·개방과 반부패 정책을 지지해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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