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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윤의 노동과 삶]우리가 보지 않기로 한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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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또또링3 댓글 0건 조회 35회 작성일 26-08-14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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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말이면 표지와 등이 플라스틱으로 제본된 논문과 자료집이 수십 권씩 쌓인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은 그것들을 한꺼번에 종이 폐기물로 내놓았더니, 남편이 도로 끄집어내 하나씩 뜯어내며 핀잔했다. 당신이 열심히 연구하는 그 노동자가 결국 이걸 다 분리해야 하는 것이잖아. 부끄러울 일은 며칠 뒤 또 있었다. 폐기물처리 노동자의 불안정성에 대해 자문한다는 취재기자를 통해, 나는 쓰레기 소각장과 재활용 선별장이 땅 밑에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하남시 유니온파크는 2015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복합 지하 환경기초시설이다. 지하에 쓰레기 소각, 선별, 음식물 및 하수처리시설이 들어서 있고, 지상에는 근사한 전망대와 편의시설, 푸른 잔디가 있다. 주민들은 땅 밑에 ‘숨겨둔’ 소각장 위에서 운동하고 반려견도 산책시킨다. 서울 중구에는 1999년에 이미 지하 재활용 처리장이 문을 열었고, 은평구와 강동구도 마찬가지로 지하화했다.
땅 밑의 선별장에서는 수거차가 쏟아낸 뒤섞인 쓰레기가 컨베이어벨트 위를 지나가고, 노동자들이 그 앞에서 페트병과 비닐과 캔을 손으로 골라낸다. 내가 슬쩍 내보내려던 플라스틱 표지도 그 벨트 위를 지나갔을 것이다. 음식물처리시설에서는 파쇄와 탈수와 건조가 이어지고, 소각시설에서는 누군가가 쓰레기를 소각로에 밀어 넣고 또 누군가는 그 고온의 설비를 정비한다.
한국 여름이 얼마나 더운지는 모두가 안다. 그런데 그 여름을 창문 없는 지하에서 온종일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부 설비는 45도까지 오른다고 한다. 땀으로 빠져나간 염분을 채우려 소금을 먹고, 안전 때문에 긴소매 작업복은 벗을 수 없다. 짧은 휴식시간에 지하 4층에서 지상까지 올라갔다 오는 시간이 아까워 그대로 주저앉는다고 했다.
2026년부터 수도권에서는 생활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고, 발생한 곳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원칙이 시행됐다. 매립지의 토양오염을 줄이는 일은 필요했고, 한곳에 집중돼 있던 부담을 나누자는 취지도 정당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우리는 환경을 위해 매립을 반대하고 분리배출도 성실히 한다. 그렇게 필요해진 재활용시설과 소각장은 ‘어딘가’에 지어져야 하는데, 그 어딘가는 어디인가. 그래서 나온 해법이 ‘지하화’였다. 서울시와 수원시가 준비 중인 쓰레기처리시설 역시 같은 방식이다. 갈등은 해소된 것이 아니라 땅 아래로 내려갔을 뿐이다.
국가는 눈에 보이는 오염, 냄새와 소음과 먼지를 관리하는 데는 유능하다. 그것이 시민의 지지를 얻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환경에 전면적으로 투자하는 일 앞에서는 멈춘다. 불안정 노동자의 목소리는 힘을 갖기 어렵고, 비용 절감에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과는? 줄지 않는 쓰레기를 다만 보이지 않게 할 뿐이다.
산업안전보건 기준은 환기가 불충분하고 화재 위험이 있는 곳을 ‘밀폐 공간’으로 정해 엄격한 안전조치를 요구한다. 그러나 폐기물관리법에는 지하화에 따른 노동안전 기준이 매우 부족하다. 오염된 공기는 ‘정화’ 장치를 거쳐 지상으로 나가지만 지하에서 일하는 사람을 위한 ‘환기’ 설비는 미흡하다고 현장 노조는 말한다. 이 얼마나 비대칭적인가. 위험은 한 번 더 옮겨진다. 생활폐기물처리시설 노동자의 약 61%가 민간위탁 소속으로, 3년짜리 계약직으로 일한다. 위탁업체가 바뀔 때마다 고용도 연차도 끊긴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나흘 이상 치료받은 노동자 가운데 72%는 산업재해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분리배출을 마친 뒤의 뿌듯함, 시설 위의 친환경적인 공원, 눈앞에서 사라진 쓰레기. 시민에게는 효능감을, 국가에는 정당성을 주지만 쓰레기 총량은 뚜렷이 줄지 않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남는다.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진짜 전환은 그 부담과 불편을 함께 지겠다는 사회적 연대 없이는 불가능하고, 그 연대에서 폐기물처리 노동자를, 나아가 우리 사회의 노동자를 빼놓고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지하 쓰레기처리시설의 노동환경과 안전기준을 법에 명시하는 일, 민간위탁 구조를 다시 들여다보고 공공 일자리로 만드는 일, 무엇보다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배출 이후 누군가의 손을 거쳐야 하는 그 과정에까지 관심을 두는 일부터다.
이 폭염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45도의 지하에서 우리의 깨끗함을 대신 감당하고 있다. 도시는 저절로 깨끗해지지 않는다. 땅 아래의 여름을 우리는 보지 않기로 했을 뿐.
최근 국내 증시 변동성을 키운 원인으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함께 국내 증시의 큰손인 국민연금의 운용 방식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증시 상승장에서 일부를 팔아 수익을 실현(자산 재배분·리밸런싱)하고 시장 과열을 완충했어야 했는데 오히려 국내 증시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를 높인 결과 수익률과 시장 안정이란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놓쳤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11일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평가액은 지난 5월 말 기준 1848조7000억원이다. 이 중 국내 주식은 543조6350억원으로 전체의 29.4%을 차지했다. 지난 2월 말 24.9%였던 국내 주식 비중이 불과 3개월 만에 4.5%포인트 높아졌다.
당초 올해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은 14.9%였다. 2월에도 국내 주식 비중은 기준치를 크게 웃돈 셈이다.
연기금은 통상 보유 자산이 목표 비중을 초과하면 일부를 매도하고, 목표 비중에 못 미치면 매수해 목표 비율을 유지하는 리밸런싱을 한다. 장기 투자자인 연기금이 큰 위험을 피하고자 정한 규칙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을 한꺼번에 매도하면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리밸런싱을 6월 말까지 유예했다.
국민연금은 이에 그치지 않고 5월 말 국내 주식 목표 비중을 14.9%에서 20.8%로 높이고, 전략적자산배분(SAA·중장기 목표 비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범위) 허용 폭도 확대했다. 전술적자산배분(TAA·시장 상황에 따른 단기 조정 범위) 허용 폭은 기존 ±2%포인트로 유지했다. 시장에서는 SAA 허용 범위를 ±6%포인트로 추정해 국민연금의 최대 국내주식 보유 한도를 28.8%로 보고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 6월 23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이 좋은 장을 기준 때문에 포기하면, 우리가 바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목표 비중이라는 규정에 따라 주식을 바로 팔면 수익률을 더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와 학계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올해 상반기 코스피가 111% 급등하는 동안 리밸런싱을 하지 않고 국내 주식 목표 비중과 허용 범위를 조정하면서 운용 원칙을 훼손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내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반기 상승장에서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을 일부 매도해 목표 비중을 맞췄다면 수익을 실현하는 동시에 과도한 상승세를 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최근과 같은 하락장에서는 앞서 확보한 현금으로 저가 매수에 나섬으로써 증시 낙폭을 완충할 여력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과 같이 중장기 목표 비중을 미리 설정해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 투자자는 시장이 과열되면 목표 비중을 맞추려 자산을 매도해 결과적으로 시장 안정자 역할을 하게 된다”며 “국민연금이 상반기 리밸런싱을 유예하면서 시장 안정자 역할을 못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상반기 상승장에서 리밸런싱을 미루면서 수익 실현 기회를 놓친 결과 하반기 증시 급락 국면에서 손실을 키웠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5월 마지막 거래일인 29일 코스피 종가(8476.15)와 당시 국민연금 국내주식 평가액을 기준으로 지난 7일 코스피 종가(6258.77)에 따른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평가액을 계산하니 약 401조원으로 추산됐다. 5월 말보다 약 142조원 줄어든 규모다.
국내 주식을 제외한 다른 자산의 평가액이 변하지 않았다고 가정하면 전체 기금에서 국내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29.4%에서 약 23.5%로 낮아지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는 목표 비중 아래로 내려온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운용 원칙에 손을 대 손실이 커진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21년 이른바 ‘동학개미운동’ 열풍과 주가 상승으로 국내 주식 비중이 목표 비중을 초과하자 국민연금은 SAA 허용 범위를 기존 ±2%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확대했고, TAA 허용 범위는 ±3.0%포인트에서 ±2.0%포인트로 줄였다. 그 결과 2022년 국민연금 전체 수익률은 -8.28%, 국내 주식 부문 수익률은 -22.75%를 기록했다. 기금 전체로는 79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운용 원칙을 일관되게 지키지 못하는 것은 시장 상황과 여론, 정부 등 외부 변수에 흔들리기 쉬운 의사결정 구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당연직으로 맡고, 복지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임명되는 구조다.
2021년 국민연금이 SAA 허용 범위를 확대했을 당시에도 정부 측 주장이 의사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4년이 지난 2025년 4월 공개된 ‘2021년 3월 기금운용위 3차 회의록’을 보면 김용범 당시 기획재정부 1차관(현 청와대 정책실장)은 회의에서 “허용범위 확대와 같은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가장 인상 폭이 큰 1안(±3.5%포인트)를 밀었다. 기획재정부 2차관 출신인 김용진 당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잠정적인, 한시적인 한도 인상을 지지한다”고 힘을 실었다.
그러나 신왕건 당시 투자정책전문위원장은 “지난 10년간 국내 주식 허용범위가 고정돼 주기적으로 허용 범위를 바꾸는 개선이 필요하다”면서도 “최근의 국내 주식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시사하는 것인지에 대한 심층적 분석, 전문적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이 (구조적 변화 판단)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금 운용의 장기 전략적인 틀을 운용 기간에 긴급하게 변경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일관성과 신뢰성에 흠결을 가져오지 않겠는가”라고 밝혔다.
당시 참여연대 몫으로 위원을 맡았던 이찬진 현 금융감독원장도 이 회의에서 “(기금운용지침을) 개정하는 작업을 백그라운드 논거나 합리적인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먼 훗날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제도의 신뢰 부분, 원칙 훼손 문제에 관해서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신중하게 봐야 할 것”이라고 원칙 변경에 우려 목소리를 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내 증시 활성화를 국정 핵심 과제로 내세운 데다 올해 상반기가 6·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이 대규모 매도에 나서면 증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정치적 고려가 일부 반영됐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국민연금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리밸런싱을 유예한 건 정치적 영향이 크다고 본다”며 “중기 자산 배분은 정치적 바람에 흔들리지 말라고 만든 제도인데 이 원칙이 깨지면서 국민연금이 누구나 건드릴 수 있는 연기금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최재원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민연금은 독립기관으로 운영되는 것이 좋다”며 “여론에 떠밀려 운용 원칙을 어기게 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거버넌스(의사결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외에선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가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된다. CPPIB는 정부와 거리를 두도록 설립된 독립적 투자기구다. 구체적 투자 판단은 정부가 아닌 전문 경영진이 담당하고 이사회가 이를 감독하는 구조다.
남 선임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이 독립성을 높이려면 정부의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기금운용위 구성과 위원 선임 절차 등 지배구조와 의사결정체계의 투명성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창민 경제개혁연구소장 겸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에서 빼 독립 위원회로 만들거나 별도의 회사로 공사화하는 방안, 기금운용위에 정부 관료들을 빼고 전문가를 보강해 전문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보강하는 방안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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